참가후기

서가영(교환학생 제 20기) - Red Creek High School

작성자 KEF
작성일 18-01-16 14:46 | 조회 86,980

본문

 

066a475b315df88cdec8d667b737abb8_1516081566_7489.jpg
교환학생을 간다는 친한 친구의 소개로 교환학생 프로그램 재단인 Nacel Open door를 알게 되어 꿈에 그리던 교환학생이 되어 거의 11개월을 미국에서 보내고 온지 어느덧 두 달이 다 되어간다. 다른 교환학생에 비해 늦은 나이, 고 2에 한국을 떠나는 마음은 가볍진 않았지만 내 앞에 펼쳐질 새로운 미국생활에 대해 떨리는 마음과 설렘을 가지고 아쉬운 친구들과 가족과의 작별 인사를 뒤로 하고 미국으로 향했다. 내가 갔던 곳은 미국 북동부 뉴욕 주의 Fair haven이라는 작은 시골마을이다. 국립공원이 있고 여름이면 캠핑카들로 가득한 예쁘고 아담한 마을로, 주위는 나무와 꽃, 숲, 밤에는 별들로 가득하고, 차를 타고 달리다보면 다람쥐는 기본 사슴까지 볼 수 있고, 이웃들은 서로를 잘 알고 또 인정도 넘치는 곳, 자랑하자면 끝이 없는 그런 곳이었다. 다른 교환학생보다 조금 일찍 미국에 도착한 나는 9월 학기가 시작될 때 까지 한 달가량의 시간이 남아있었다. 이 시간 덕분에 가족과 더 많은 대화를 나누면서 다가갈 수 있었고 학교와 관련된 스트레스 없이 '미국'생활을 더 잘 알아갈 수 있었던 계기가 되었던 것 같다. 

호스트 엄마의 어머니, 아버지 즉 나의 호스트 할머니 할아버지께서는 걸어서 15분정도 , 아빠 쪽 할머니, 할아버지 집은 걸어서 2분 거리에 사셨기 때문에 왕래가 잦으셨고, 나에게도 매우 친절하셨으며, 한국에 돌아가기 전에는 서로 부둥켜 울 정도로 정이 많이 들었던 분들이다. 나의 호스트 엄마는 '베이비시터'이셨고 재밌고 유쾌하고, 솔직하시고, 인정이 많으셨지만 엄격하신 분이셨다. 학교에서 항상 돌아오면 한국 엄마보다 더 엄격하시게 무조건 내 방으로 들어가서 숙제부터 끝내게 하셨다. 저녁을 먹고 나서도 끝내지 못하면 텔레비전도 못 보게 하실 정도로 엄하셨고, 이 때문에 처음에는 힘들고 친엄마도 아닌데 왜 그러실까 하고 원망 아닌 원망을 하기도 했었지만 이런 습관 때문에 자칫하면 풀어지기 쉬운 환경에서도 공부를 계속 맘 잡고 할 수 있었고 이 덕분에 어려웠던 학교과목도 A를 받을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항상 엄격하셨던 것만은 아니시다. 워낙 재미있으시고 인정이 많으셔서 항상 친구들이 주위에 가득하시고 동네 슈퍼마켓을 갈 때나 어디를 가셔도 나를 데리고 가셨는데 이 덕분에 사람들의 대화를 많이 듣고, 또 하게 되고, 이것저것 많은 경험을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나의 호스트엄마는 항상 내가 어떻게 하면 더 미국의 경험을 할 수 있을까 생각하셨다. 그 예로 미국 파티, 친구들과의 sleep over(슬립오버)는 물론, 뉴욕 씨티(New york city),나이아가라 폭포도 엄마와 다녀왔고 씨니어 트립(senior-trip)으로 보스턴까지 갈수 있도록 허락하셨다. 거기 엄마는 한국음식을 참 좋아해서 한국 라면, 컵라면, 쌀과자 등의 한국과자, 불고기, 인스턴트 미역국, 곰탕 특히 김치를 참 좋아하셔서 나와 죽이 잘 맞았다. 

나의 호스트 아빠와의 관계는 정말 친딸이상으로 생각해주셨을 만큼 너무 잘해주셔서 지금도 호스트아빠를 생각하면 눈시울이 붉어질 정도다. 항상 나를 먼저 생각해주시고 같이 수영도 가고 나에게 사냥, 요리, 미국경제, 드라마도 같이 보고, 어떤 대화를 막론하고 나와 대화해주셨다. 

이런 두 분과 내가 친딸보다 더 친딸 같은 관계를 이룰 수 있었던 것은 그분들도 노력을 많이 해주셨지만 나도 그러기 위해 노력을 정말 많이 했다. 처음 6개월 동안은 노트북 없이 생활하였는데 내 기억으론 내 방에서 혼자 2시간이상을 앉아있었던 적이 없던 것 같다. 숙제를 다 하고 나면 방에서 나와 대화도 먼저 걸고 저녁 요리도 도와드리고 산책도 같이 가고, 엄마 빨래도 도와드리고, 아빠가 garage(차고)에서 일하고 계시면 가서 말동무도 되어드리고, 또 내가 먼저 그분들을 Mom, Dad라고 부르기 시작한 것이 그분들에게 더욱 가까이 다가 갈 수 있었던 계기가 되었다. 또 남자형제 3명만 있는 집이라 처음 걱정을 많이 했지만 나중에는 장난도 부담없이 치고 또 오빠와는 둘이 같이 쇼핑도 자주 갈 정도로 돈독해진 사이가 되었다. 

내 교환학생 경험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이 또 하나 있다면 미국학교이다. 내가 다녔던 Red Creek High school은 초. 중. 고가 같이 있는 공립학교인데 고등학교 전교생이 400명쯤 되는 작은 학교였다. 엄마의 도움으로 친구 한명을 사귀어 그 애의 친구들과 일주일은 같이 밥을 먹었지만 마음이 잘 안 맞았고 그래서 점심시간이 두려웠다. 그러나 일주일쯤 지났을까 평소 피아노연주를 즐겨하던 내게 Jazz Band라는 것이 있다는 소식이 들려왔고 그 반에 들어가서 지금도 종종 연락을 하는 내 Best friend 올리비아(Olivia), 에밀리(Emily), 또 그 아이들을 통해서 코넬대를 들어간 수재 스티븐(Steven), 잘생겼지만 하는 짓이 괴짜인 Dan을 만나 제2의 행복한 학교생활을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또 거기엔 중국 교환학생 (Tom)과 또 다른 한국 교환학생 오빠 (Tyler)가 있었는데 한국이 그리울 때마다 서로 얘기를 하는 것이 많은 위로가 되었었다. 

과목은 학교마다 다르겠지만 나는 한국에서 경험해보지 못했던 Baking(제과), Ethnic foods(세계음식), Computer graphic(컴퓨터그래픽), U.S. History(미국사), Trigonometry(수학), P.E.(체육)을 1학기에, Baking, P.E, English 11(영어), Communication(커뮤니케이션), Study Hall(자습)을 2학기에 들었다. 1학기에 들었던 미국사는 지금 생각해도 제일 어려웠던 과목이었는데 1학기 중 3개월은 정말 이 악물고 복습하고 숙제하고 공부했었던 것 같다. 단어도 단어이지만 분량도 많았고 또 시대별로 미국사를 영어로 외워야 했던 것이 힘들었지만 점점 시간이 흘러가면서 수업내용도 귀에 들리고 외계어로 보였던 미국사가 점점 내 것이 되어가는 희열을 느끼면서 흥미를 가지게 된 것 같다. 2학기에 들었던 English 11은 우리학교 11학년 중 40%이상이 Fail(낙제)하는 어려운 과목이었다. 햄릿, 위대한 게츠비 등과 같은 문학을 수업시간에 다루고 읽고 에세이를 쓰는 게 주였는데 이 또한 미국사 만큼 만만치 않았다. 모르는 게 있으면 친구들과 선생님에게 바로 달려가 질문하고 호스트 엄마한테도 도움 받으며 한국에서 보내준 번역판을 읽고 또 에세이를 계속 쓰면서 연습하며 노력하였더니 A를 줄곧 받게 되었고 학기를 마무리할 때는 만족할 만한 성적을 받게 되었다. 

물론 교환학생 기간의 시간을 공부로만 보낸 것은 아니다. 엄마와 친구들과 함께 계절 스포츠였던 축구(9~11월), 농구(2~4월), 야구(5~7월)게임을 따라다니며 즐겼고 학교댄스파티였던 homecoming dance, Prom, 12학년 친구들과 함께한 Senior lock-in, Senior trip, 미국 고등학교 졸업식을 체험할 수 있었고 여자 Powder puff ball팀에 들어가 활약했고 Jazz band와 Bible club에 들어가 활동했고, 이것뿐만이 아니라 미국만의 절정인 휴일, 즉 할로윈, 추수감사절, 크리스마스, 뉴이어(New year)등과 같은 휴일을 몸소 체험했을 땐 너무나 신나고 떨리고 재밌어서 사진으로 계속 남겨두었다. 일상생활에서 내가 느끼고 체험했던 것을 그냥 놓쳐버리는기 아까워서 사진을 찍고 구웠던 게 CD 11장이 되어 지금 내 보물 1호중의 하나가 되어버렸다. 

다른 한 가지 팁을 주자면 매일 다이어리를 쓰는 것이다. 나는 내 인생의 한번 밖에 없을 이 기회를 놓치기 싫어서 하루하루 인상 깊었던 점, 새로 배운 점, 또는 세 줄의 짧은 생각이라도 자기 전 매일매일 적어 내려갔다. 지금 그 다이어리를 피면 '아,! 내게 이런 일이 있었구나'하고 회상하곤 한다. 그리고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이 있는 법! 11개월 동안 친 가족, 친척처럼 대했던 호스트 가족, 친구들을 떠날 때가 되니 정을 확인하는 기회였다. 마지막 날은 공항에서 한편의 슬픈 드라마를 찍었던 기억이 난다. 미국에 처음 가서 생활해 가면서 문화충격으로 다가온 것도 많고 또 상처가 되었던 것도 많다. 지금 생각해보면 미국에서 있었던 일들이 너무나도 행복하고 새롭고 절대 한국에서 경험할 수 없는 그런 것들이었지만 모든 일들이 나에게 쉽게 다가왔던 것은 아니다. 그 일들 중간 중간에 한국친구, 가족들을 향한 향수병, 호스트 가족과의 작은 트러블, 왠지 모를 우울증들이 나를 괴롭혔지만 그것들을 이겨내는 방법을 찾아가면서 그런 상황에 적응하고 또 극복해가면서 더욱 내 자신을 성장해나가는 것 같다. 

미국이란 나라, 거대한 나라를 11개월이란 짧은 시간에 알아가는 것은 힘든 것인 줄 알지만 한국에서 인터넷이나 대중매체를 통해 보는 미국과 직접 몸소 체험하는 미국은 확연히 다른 점이 있었다. 좋은 점 뿐만 아니라 그 사회 속에 숨겨진 미국 사회 폐해도 많이 알게 되어 온 것 같다. 또 이 기회에 미국 사람들에게 한국을 알리고 온 것 같아 기분이 좋기도 하다. 요즘에도 메일, 전화로 호스트가족들, 친구들과 연락 하고 있는 나는 그들과 연락할 때 마다 정말 귀한 인연들을 내가 거기서 만났구나 하고 새삼 느낀다. 11개월, 1년이 채 안된 시간이었지만 그 시간들은 지금까지도 나에게 너무너무 소중하고 죽을 때 까지 잊을 수 없는 경험이다. 힘들 때마다 전화로 나에게 도움 주신 Nacel Open Door 담당자께도 감사드리고 엄마에게도, 그리고 한국친구들에게도 고맙다. 이 후기로는 10장을 써도 모자랄 정말 굉장하고 놀랍고 새롭고 말 그대로 awesome!한 교환학생으로서의 11개월이었다. 만약 주변에 교환학생을 준비하고 있는 친구들이나 고민하고 있는 친구들이 있다면 당장 인생의 잊을 수 없는 경험이 될 것이라고 추천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