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가후기

최화연 (Norfolk Collegiate School 2012년 졸업, UCLA 입학)

작성자 KEF
작성일 18-01-16 14:20 | 조회 2,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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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ke the first step in faith” 
중학교 졸업 후, 나는 대전으로 (국내) 유학을 가게 되었다. 외고에 입학하자마자, 같은 영어 과 유학파 친구들의 영어 실력에 정말 기가 팍 죽었던 나에게 그들의 ‘살아있는’ 영어는 신선한 ‘충격’이자 크나큰 자극제였다. 
학교생활을 통해 우리나라의 숨막힐 듯한 입시제도에서 내가 그만큼의 노력을 미국에서 쏟는다면 과연 어떤 결과를 얻을 수 있을까? 물론 내 도전을 전폭적으로 지지해준 아빠와 처음엔 정말 많이 반대도 하셨지만 지금은 누구보다도 나를 자랑스러워 하시는 엄마가 없었다면 내가 간절히 원했던 꿈은 그저 꿈으로 남아있었을 것이다. 난 항상 미국에서 (꼭 공부뿐만이 아니라) 했던 노력의 양과 외고에 남았었다면 쏟았어야 할 노력의 양을 비교하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생각한다. 사람은 그 사람이 우연히 존재하게 된 그 공간과 시간의 차원에서 그저 최선을 다하는 것일 뿐이니까. 그런 면에서 내 미국 생활은 정말로 값지고 후회 없는 멋진 경험이다. 
1년 교환학생으로 갔던 시골의 작은 학교에서 6학년 초등학생들에게 ‘한국’에 대해 소개하는 프레젠테이션을 했다. 프레젠테이션 전날, 손수 김밥을 싸고 불고기를 만들고, 아이들의 이름을 소리 나는 대로 한글로 쓴 이름표를 만들고, 고추장과 김치도 준비하며 뿌듯해 하던 내 모습을 기억한다. 또한, 학교 ‘농구부’에서는 어렸을 때부터 줄곧 선수 생활을 해온 미국 아이들에 비하면 난 턱없이 부족한 실력이었지만 포기하지 않고 시즌 끝까지 팀에 남았다. 벤치에 앉아있는 설움도 많이 느꼈지만 그 동안 부족했던 체력이 좋아져서 실력이 향상되자 나도 경기에 뛰는 시간이 늘어났다. 그렇게 난 또 한 번 정신적, 육체적으로 성장 할 수 있었다. 진정한 미국 친구를 사귄 것도 내가 ‘농구부’와 ‘축구부’에 들어가고 난 후였다. 정규수업 시간에는 대화를 할 기회가 거의 없지만, 스포츠를 하면 자연스럽게 버스를 타고 경기를 하러 가기 때문에 대화 할 시간이 많다. 물론 육체적인 활동을 같이 하면서 쌓이는 친밀감도 상당하다. 처음에는 그렇게 사귀기 힘들 것만 같았던 미국 친구들이었는데 농구, 축구를 함께 하면서 어느새 나를 위해 깜짝 선물로 Hershey Chocolate Land 에 데려가 줄 정도로 정말 잊지 못할 추억을 안겨주던 사이가 된 것이다. 
1년 교환학생 프로그램이 끝나고 Nacel 크리스천 사립유학 프로그램으로 유학생활을 연장하면서 난, 버지니아 주 Norfolk 이란 미국에서 가장 큰 Navy Base(해군 기지)가 있는 곳의 Norfolk Collegiate School(이하 NCS)에 12학년으로 입학 허가를 받았다. 미국 대학 진학에 대한 준비가 전무했기에 나의 여름 방학은 그 누구보다, 그 어느 때보다 치열했다. 난 솔직히 그런 생활을 즐겼다. 무엇인가를 위해 미친다는 것은 정말 행복한 일이다. 난 성공을 이렇게 정의한다. ‘무엇인가를 위해 미쳐 생활하는 것이 너무 행복하고 운 좋게 그 일의 결과마저 좋다면!?’ 
내 성공의 정의에 따르면 SAT 점수뿐 만 아니라 NCS에서 보낸 나의 마지막 고등학교 1년은 완벽한 성공이다. 내게 1년 밖에 재학 하지 않은 학교에서 (그것도 미국 고등학교!) 고등학교 졸업장을 받는다는 것은 걱정되던 일이었다. 하지만 작년과 비교해 이곳은 천국이었다. 물론 내가 좀 더 적극적이고 자신감 있게 행동한 부분도 있었지만, 학교 교과 과정의 수준이나 학생들의 학구적인 마음가짐이 나와 잘 맞아서인지 NCS에서 난 학교에서 꽤 알아주는 Korean 이 되어있었다. 9월부터 1월까지는 미국 대학 입시 원서 작성과 에세이 작성에 난 또 미쳐서(그것도 즐겁게!) 생활했다. 난 에세이를 쓰는 내내 너무 어렵고 답답하다고 생각한 한편, 그 과정조차 나 자신을 되돌아보게 하는데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다. 학교 영어 선생님을 쉬는 시간, 방과 후를 가리지 않고 찾아가 에세이를 고치고 또 고치면서, 또 학교 카운슬러와 무수히 많은 얘기를 나누면서 나의 학교 NCS에 대한 애정이 싹트기도 했다. NCS에서 내가 가장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일은 내가 창단한 ASIAN CULTURE APPRECIATION CLUB(이하 아시안 클럽)이다. 원래는 Korean Club을 만들 생각이었지만, 내가 친하게 지냈던 중국 여학생, YingYing의 도움으로 좀 더 포괄적인 Asian Club을 만들었다. 학교 조회 시간에 내가 강단 앞으로 나가 ‘내가 아시안 클럽을 만들었으니 많이 참여해주길 바란다. 꼭 아시아인이 아니어도 가입할 수 있다!’ 라고 말해 전 학생과 선생님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던 일이 기억난다. 그래서인지 난 아시안 클럽 활동을 수월하게 할 수 있었다. 빼빼로 데이에는 아이들과 빼빼로를 나눠 먹었고, 설날에는 호스트 엄마의 동의를 구해 우리 집에서 New Year’s Day Party를 열었다. 파티를 위해 나는 잡채, 김치전, 닭도리탕, 김밥, 김치 볶음밥, 비빔밥, 불고기, 그리고 떡만두국을 직접 요리했다. 내 가장 친한 친구들인 Mackenzie 와 YingYing도 호떡과 중국식 닭날개 요리를 가져와 날 도와주었다. 미국 친구들도 초대한 이 파티에서 우리는 같이 만두도 빚고, 김치전도 부치고, 윷놀이와 공기놀이도 했다. 난 한국에서도 입지 않았던 한복까지 곱게 차려 입고 직접 세배 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우리 문화를 소개했다. 아직까지 이렇게 생각만 해도 설레는 걸 보면 (정말 아이러니하지만) 지금까지 보냈던 설날 중에서 가장 행복한 설날이 아니었나 싶다. 그 밖에도 학교 Homecoming Court(홈커밍) 에 뽑혔던 일, 락밴드를 꾸려 학교 축제에서 멋지게 드럼연주를 했던 일, 하버드 인터뷰관과의 잊지 못할 면접, 워싱턴 DC로의 여행, 그리고 깜짝 굿바이 파티까지... 
이렇게 많은 사람들에게서 받은 사랑으로 난 결국 UCLA란 좋은 대학교에 진학하기로 결정했고, 항상 무언가를 시작하기 전에는 이 말을 되뇌며 행복해한다. 
Take the first step in faith. You don't have to see the whole staircase, just take the first step. 
-Martin Luther King, Jr. 
믿고 첫 걸음을 내딛어라. 계단의 처음과 끝을 다 보려고 하지 마라. 그냥 발걸음을 내딛어라. –마틴 루터킹 주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