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가후기

곽효진 (Salem Christian School 2015년 졸업, University of Washington 입학)

작성자 KEF
작성일 18-01-16 14:28 | 조회 114,0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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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유학 결정을 내렸던 시기는 중학교 3학년 과정을 모두 마치고 나서 2월달 무렵이었던 것 같다. 내 주변에는 이미 초등학교를 마치고 미국으로 유학을 간 친구들이 있었지만 그렇다고 한번도 진지하게 유학에 대해 생각해보거나 가고 싶거나 하는 마음은 없었다. 그러던 중, 아빠가 신문에서 유학 프로그램에 관련된 정보를 보시게 되었고 나셀 프로그램으로 유학을 하고 있는 친구 부모님의 도움을 얻어 상담을 받게 되었다.

9월 학기가 시작되기 전에 미국 학교의 모습을 체험하는 목적으로 Nacel Open Door 재단에서 설립한 미네소타에 있는 St. Paul 고등학교에 9학년으로 재학하게 되었다. 비록 짧은 시간 동안에 미네소타에서 호스트 패밀리와 지냈지만 내 룸메와 같이 했던 모든 시간들과 추억들은 지금도 잊을 수 없는 내 일생의 소중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미국 학교의 생활은 모든 게 다 처음이었기 때문에 학교에서 과목 스케줄을 담당하시던 선생님께서는 내게 모든 수업을 ESL과정으로 듣는 것을 추천하셨다. 그리하여 미술과 음악 그리고 체육을 제외한 모든 수업들은 많은 국제학생들과ESL수업을 같이 듣게 되었다. 내 앞에 항상 앉던 콜롬비아에서 온 친구가 있었는데 그 아이와 친하게 지냈던 것인진 몰라도 아직까지 기억에 선명히 남아있다. 국제 학교였기 때문에 중국과 한국을 제외하고도 많은 남미계열 친구들, 아프리카 가나에서 온 친구들, 그리고 유럽 친구들이 많았었다. 점심시간에는 Asian Express를 주로 이용해서 먹었고 그 외에도 카리부 커피 등등 스카이웨이를 따라서 많은 가게들에서 밥을 먹었었다. 특히 카리부 카페 가기 전에 있었던 조그마한 커피점에서 아침마다 항상 아이스모카를 주문해서 수업시간에 마셨던 것이 기억난다. 음악시간에 난타를 배웠던 것도 기억나고 마지막으로는 talent show를 학기 마지막에 했었는데 나와 친했었던 친구가 부른 Adele의 rumor has it이 가장 많이 생각난다. 

이렇게 6월달까지 무사히 공부를 마치고 나는 학교를 옮겨서 펜실베니아의 정말 작은 타운에 있는 Salem Christian School 에 다니게 되었다. 학교는 Macungie 라는 작은 마을에 위치해있었는데 pre kindergarten 아이들부터 고등학교 학생들 총 인원수가 200명이 조금 안 되는 작은 학교였다. 내 호스트 패밀리는 60대 정도 되시는 할아버지 할머니셨는데 정말 너무 잘 대해주시고 나를 “my little one” 이라고 불러주실 만큼 막내딸처럼 대해주셨다. 하지만 집에 아이들도 없고 원래 수다떨기를 좋아하는 나이 인지라 너무 조용하게 생활을 하게 되어 10학년 초반에 처음 와서는 정말 내가 우울증이 걸렸나 이럴 정도로 자주 울고 싶었고 도시에 위치하고 있었던 미네소타 학교로 다시 돌아가고 싶었다. 그러던 중에 배구팀의 코치로 일하시던 호스트 아저씨께서는 내게 팀으로 들어 올 것을 권하셨고 난 그렇게 해서 팀에 들어가게 되었다. 아무래도 처음으로 배구라는 종목을 정식적으로 배우다 보니 많이 힘들었었고 몸이 마음을 잘 따라가주지 못하는 것 같아 팀원들에겐 항상 미안한 마음이 있었고 내 자체가 즐기지 못 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학습적으로는 이전에 말했듯이 워낙 조용한 마을에서 집에서 아이들 없이 혼자서 공부를 하다 보니 집중을 잘 할 수 있게 되었고 한국과 미네소타에서 있었던 것 보다는 학업에 더욱더 시간투자를 많이 할 수 있었다. 노력한 만큼 결과도 잘 나와주어서 honor roll과 교장선생님이 주시는 상장들을 받았던 것이 기억난다. 상장을 받을 때마다 매번 부모님께 카톡으로 찍어서 보내 드렸던 것 같은데 그럴 때마다 나를 더욱 응원해주시고 칭찬해주시고 또 기뻐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그것에 희열을 느끼게 되어 소위 공부할 맛이라는 것을 찾았던 것 같다. 

10학년때는 새로운 학교 적응과 친구 사귀는 것 그리고 학업에 열중을 했고 스포츠는 배구밖에 하지 못 했던 것 같다. 11학년에 와서는 과목마다 어떻게 공부를 해야 효율적으로 이해하고 공부할 수 있을지를 터득하게 되어 숙제 시간과 시험공부시간 모두 줄일 수 있었다. 예를 들어 11학년 영어로는 American Literature를 공부했었는데 우선 책 앞에 나와있는 문학작품들의 역사적 배경을 읽으면서 대충 작가가 왜 그런 글들을 쓰게 되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러 후에는 노트에 메모해 놓았던 내용들을 읽었고 그 후에는 책에 있는 지문들을 꼼꼼하게 읽었다. 다른 수업들도 마찬가지겠지만 내 생각에는 학교 수업 중에 선생님들이 어떠한 부분을 강조하시면서 말하시는지 그리고 예시들을 꼼꼼하게 메모해두는 것이 시험공부를 할 때 좋은 방법 일 것이다. 대부분은 선생님의 눈과 목소리를 보고 들으면 무엇을 강조 하시는지 쉽게 알아낼 수 있었다. 수학도 마찬가지로 수업 때 선생님이 사용하시는 예들을 모두 노트에 필기하고 시험 전에 공부한다면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 왜냐하면 내가 경험한 바로는 미국은 한국과는 달리 시험에 특별하게 심화문제를 자주 출제 하지 않기 때문이다. 노트 필기한 위주로 공부하다 보면 분명히 좋은 점수를 얻을 거라 믿는다. 그리고 11 학년에는 활동으로 Track and Field에 참가하여 시합에도 나가보았고 Student Government 에도 참여하여서 다양한 활동들을 해 나갔던 것 같다. Student government를 통해서 내가 직접 학교 방송도 아침마다 해볼 수 있었고 그러면서 나에 대해서 친구들에게 좀 더 알리는 기회가 된 것 같았다. 11학년 말에는 공부방법을 완전히 터득하게 되어 더욱더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었고 SAT 와 토플시험 공부도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다소 소홀히 했던 게 아닌가 싶지만 나 나름대로 공부 했던 것이 기억이 난다. 12학년에는 정말 바빴었다. 토플은 다 끝내고 와서 다행이었지만 아직 SAT 성적은 만족할 만한 점수가 나오지 않고 있었다. 그 와중에 학교 공부와 대학 원서를 같이 해야 해서 12학년 초기에는 정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던 것 같다. 나는 총 11개 (UCI&UCD) 를 지원했었는데 일찍 끝내고 쉬고 싶은 마음에 나는 2주 정도 되는 크리스마스 방학에도 쉬지 않고 원서를 수정하고 쓰고 했었던 것 같다. 원서작성과 학교 지원을 하는 동안 정말 뼈저리게 느꼈던 것은 왜 내가 SAT를 좀더 시간을 들여 공부하지 않았을까였다. 조금만 더 좋은 성적을 받았더라면 조금 더 좋은 대학에 합격하지 않았을까라는 마음도 있었고 또 처음에 지원 가능한 학교리스트를 보았을 때도 정말 아쉬움이 크게 남아있었다. 그래서 하는 말인데 정말 학교 공부도 그렇고 스포츠도 그렇고 토플도 그렇고 뭐하나 빠짐없이 열심히 준비해야겠지만 그렇다고 SAT를 놓으려 하지 말고 학교에서 좋은 성적을 얻기 위해 투자하는 시간만큼 아니 그거 보단 적더라도 그렇게 비슷하게 열심히 공부를 했으면 한다. 우리학교에는 특이하고도 좋은 학교 Rule이 있었는데 그건 바로 문학시간, 수학, 사회, 그리고 과학 이렇게 네 과목들 점수를 94점 (A-) 로 1년동안 유지를 하면 학기말 고사를 보지 않아도 되는 것이었다. 난 솔직히 적어도 기말고사를 피하기 위해서라도 정말 열심히 했었던 것 같다. 그리하여 1학기 2학기 모두 기말고사를 피할 수 있었다. 

하지만 2학기에 모든 12학년들이 그렇듯 나에게도 Senioritis 가 찾아왔다. 시험이 있어도 공부를 해야 하나, 귀찮은데?? 이런 마음이 앞섰고 그러다 보니 하루 직전에 시간에 쫓겨 벼락치기로 공부를 하게 되는 경우가 늘었었다. 프로젝트 같은 경우도 2주라는 시간을 주면 놀다가 하루 전이나 이틀 전에 시작하는 경우도 있었다. 성적은 지금까지 쌓아둔 내공으로 좋게 유지되고 있었지만 내 자신이 창피했고 이래도 되나 싶기도 했다. Senioritis는 정말 피할 수 없는 무서운 “병” 중에 하나지만 그것을 견디고 일어서서 끝까지 열심히 남은 고등학교 생활을 해주길 바란다. 이런 과정을 거쳐, 나는 우리학교의 Valedictorian이라는 영광스러운 자리에 섰고 졸업식이라는 공식적인 행사에서도 무사히 성공적으로 스피치를 끝냈다. 12학년 말에 약 일주일 동안 학교에서 Senior Trip이라고 해서 그 동안에 Food Stand와 Hot Lunch 등으로 모은 Class Money를 사용해서 North Carolina에 있는 해변가로 갔었다. 그곳에서는 사진도 찍고 정말 마지막이냐면서 같이 울기도 했었고 매일 밤마다 영화도 보고 야식도 먹고 하면서 밤새 놀기도 했다. 내 생일이 여행 중에 껴있어서 친구들이 생일 케이크와 함께 마음이 담긴 손편지도 싸인들을 해서 같이 주었었다. 너무 뜻 깊었고 잊지 못할 추억 인 것 같다. 여행도중에 South Carolina의 유명한 바닷가도 여행했고 친구들과 같이 마지막으로 쇼핑도 했었다. 12학년 때 힘들고 귀찮다는 이유로 스포츠 활동은 안 했었지만 마지막으로 축구팀에 들어가면 어땠을까 하는 마음도 있다. 

비록 내가 3년 동안 다녔었던 펜실베니아의 작은 학교가 다른 큰 학교들에 비해서 분명히 스포츠활동도 적었고 AP courses들은 없지만 그만큼 정규수업에 집중하여 더욱 알차게 공부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내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정말 학교공부와 스포츠 활동도 힘든데 거기에 심화과정들도 학교에 있어서 대학을 위해 들어야 했더라면 아마 지금껏 받아온 좋은 성적을 받기는 힘들었을 것 같다. 심화과정들이 많은 학교에서 많은 스포츠 활동을 하며 큰 학교에서 고등학교 생활을 보내는 것도 좋겠지만 나는 작은 학교에서 AP부담없이 내신에 집중하는 것도 나쁘진 않다고 본다. 또한 학교가 워낙 작았기에 궁금한 점이 생기면 바로 바로 찾아갈 수 있는 선생님도 계셨고 그 분의 도움을 많이 받아서 학교 생활에 정말 많은 도움이 되었었다. 결론적으로 본인에게 맞는 학교를 선택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다. 내가 이 글을 쓸 수 있게 되어서 기뻤고 또 내가 인정받고 있다는 기분이 들어서 행복하다. 
이 글을 읽는 모든 이들 에게 하나하나 다 도움이 될 만한 글 일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어느 누구에게만큼은 이 글이 도움이 되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마지막으로 유학생활을 하면서 느끼는 외로움은 분명히 있겠지만 나는 음악이 정말 큰 힘이 된다고 느낀다. 특히 나같이 정말 작은 시골동네에서 공부하는 유학생이라면 그 적막함을 달래줄 무엇인가가 꼭 필요 할 텐데 음악과 함께 생활하다 보면 시간은 금방 가있을 거라고 믿는다. 이번에 올라오는 12학년들에게는 정말 끝까지 힘내라는 말을 하면서 이 글을 줄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