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가후기

이승현(Harrisburg Academy in PA 2013년 졸업, University of Michigan 입학)

작성자 KEF
작성일 18-01-16 14:35 | 조회 2,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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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능은 없다.” [Impossible is Nothing.] 이 문장은 내가 맨 처음에 유학 생활을 시작했을 때의 모토이다. 내 친구들이 이 문구가 문법적으로 틀렸다고 가르쳐줬음에도 나는 그걸 깨닫기까지 어느 정도의 시간이 걸렸다. 그 문구를 조금 고쳐 “아무것도 안 되는 것은 없다” [Nothing is Impossible] 라고 이해하고, 그리고 이 맞는 문구에 적응이 되어갔을 즈음에 나는 조금 더 성숙해져 있었다. 그쯤 나는 살아남은 자였다. 

2008년 9월, 해리스버그 아카데미에서 9학년으로서의 삶이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한 학년에 평균 25명밖에 되지 않는 이 작은 학교의 지도조차 잘 외우질 못했다. 가끔씩 다른 교실에 가기도 하고, 맞는 수업에 늦기도 했으며, 수줍어하고 선생님 이름을 제대로 발음을 할 줄 몰라서 (Mr. Rauenzahn) 말을 거의 안 했다. 또한, 영어에는 높임말이 없기 때문에 선생님한테 ‘너’라고 말하는 것이 예의 없어 보여서 말 하는 것을 꺼려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저런 걱정들은 내가 친구들을 만들고 나서 점차 없어졌다. 

한국이든, 미국이든, 친구들은 똑같은 보물이다. 친구들과 만든 9학년의 값진 추억들이 4년이 지난 지금에도 또렷이 기억이 난다. 그 많은 추억 중 하나는, 함께 쿠키를 만들었던 것이다. 미국인들은 자주 브라우니, 컵케익, 그리고 쿠키를 만들어 친구들과 나누어 먹거나 돈 모으기를 하기 때문에 나도 빵 만드는 것을 배웠다. 이 일은 보기보다 쉽고 재미있었다. 또 하나는 파티를 통해 경험한 많은 즐거움이었다. 미국에는 다양한 이벤트 데이가 있는데 그들의 열정적인 축제 분위기에 깜짝 놀랬다. 

그 밖에 방과 후 활동과 운동은 내 유학생활에 가장 많은 도움을 주었다. 미국에는 학원에 가는 일이 없어서 클럽이나 운동 팀에 들어가는 것이 내 유학생활 경험을 배로 극대화시켰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클럽은 다 참여했다 – 환경미화원, 밴드, 합창단, Tri-M, National Honor Society, 봉사활동 – 축구와 농구도 했다. 이 활동들을 통해 나는 친구들과 더욱 더 많은 시간을 보냈고 해리스버그 아카데미의 생활의 폭을 넓혀주었다. 또한 이 학교에서 나는 최고의 홈스테이를 만나기도 했다. 

홈스테이는 유학생활에 어느 큰 쪽이었다. 10학년이 되던 해에 나는 학교친구 집에서 홈스테이를 했다. 이 친구는 같이 농구를 하면서 만나게 되었는데 한 명의 인간으로서도 매우 좋은 친구였다. 이 친구의 부모님 또한 매우 친절하셨다. 친구는 나보다 한 살 많았는데, 나는 공부 도움도 많이 받으면서 불필요한 라이벌의식은 상관하지 않으며 문제 없이 가깝게 지낼 수 있었다. 나는 이 친구 집에서 최고의 2년을 보냈다. 빵 만드는 것 또한 이 친구와 함께 지낼 때 호스트 아주머니로부터 배운 것이었다. 디즈니 월드에도 갔었고, 부활절에 터키도 먹었다. 그 가족은 나에게 많은 고마운 일을 해 주었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내가 농구하느라 다리를 다쳤을 때 마치 본인들의 자식인 것처럼 보살펴 준 것이었다. 농구를 하다가 나는 무릎 근육 인대 부상을 당했고, 현지에서 수술이 필요했다. 이것은 큰 문제였고, 외국인으로서 보험이 수술을 받기 어려운 상태였다. 그 때마다, 호스트 아저씨는 나를 병원으로 데려가 주셨고, 모든 것을 다 해결하셔서 내가 수술을 잘 받을 수 있도록 도와주셨다. 수술 후에도 아저씨는 내가 재활치료까지 받을 수 있도록 도와주셨다. 그 덕분에, 그 가족의 마음으로부터 우려나는 도움 덕분에, 나는 정말로 다시 걸을 수 있었다. 나는 아직도 그 가족과 연락을 주고 받고, 홈스테이라는 제도 덕분에 나는 이 멋진 가족을 만날 수 있었다. 이 인연으로 그 홈스테이 친구는 이번 가을에 유학생으로 한국에 온다. 

내가 친구들과 홈스테이와 잘 지내는 동안, 나는 또 다른 언덕을 봤다: 공부. 나는 해리스버그 아카데미의 숙제 양에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한국에 있을 때에도 생각하고 또 생각해서 풀어야 하는 숙제는 없었던 나였는데 해리스버그에서의 공부는 정말 다른 레벨에 있었다. 과제 표제 쓰는 것부터 시작해서 나는 정말 어떻게 공부를해야 되는지부터 배웠던 것 같다. 그 경험으로 인해 나는 공부가 얼마나 재미있는 것인지에 대해서 몸소 느꼈고, 모범생 소리 같지만 새로운 사실들을 공부하고 배운다는 것이 너무나도 재미있었다. 특히, 내가 제 2 외국어로 듣고 공부하고 이해한다는 것이 이 경험들을 더더욱 재미있게 만들었다. 이 끊임없는 재미는 내가 무엇을 전공하고 싶은지 고를 수 있도록 도와주었고 나는 과학, 특히 생물학을 선택하게 되었다. 내가 맨 처음 해리스버그 아카데미로 편입하려 원서를 썼을 때, 내가 무엇이 되고 싶은지에 물었을 때, 나는 그냥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라고만 썼다. 그 후, 해리스버그 아카데미가 내 지금의 꿈과 열정을 만들어 주었고 나는 흉부외과의사가 되기로 결심했다. 12학년 마지막에도 학교는 나에게 병원에서 인턴을 할 수 있다는 엄청난 기회를 주었다. 심장 내과와 외과 의사들을 따라다니면서 몸소 보고 듣고 배웠다. 또 심장 수술을 보면서 내 미래를 볼 수 있기도 했다. 해리스버그 아카데미는 나로 하여금 내가 누구인지, 누가 될 것인지 라는 중요한 사실을 깨우쳐준 바꿀 수 없는 값진 경험들을 선물해주었다. 

만약 내 해리스버그 아카데미 경험을 한 단어로 이야기 하려면, 나는 ‘롤러코스터’라고 말 할 것이다. 지난 8년 동안 수많은 슬픈, 어려운, 성공한, 기쁜, 그리고 자랑스러운 순간들 중에 좋고 나쁨이 있었지만 그 모든 순간 순간은 소중하다. 유학을 시작할 당시에는 이 롤러코스터가 어떤 것인지도 모른 채 탔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지금의 나는 그 ‘롤러코스터’에 탈 수 있었다는 사실에 너무나 감사한다. 진심으로 유학은 내가 세상에 눈을 뜰 수 있게 만들어준 정말 잘한 선택이다. 나에 대해서, 그리고 내 꿈에 대해서 배웠고 세상을 좀 더 넓게 볼 수 있었다. 지금의 나는 “불가능이란 없다” 를 충분한 경험을 통해 배웠으므로 여러분에게 이렇게 말할 수 있으며, 이제 멈추지 않고 또 다른 롤러코스터를 타고 대학이라는 여정을 시작하려 한다!